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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물안의 행복한 개구리들
    2012 헬로루키/Story 2012. 7. 13. 15:36

    경기도 일산의 한 임대아파트. 16층 꼭대기의 끄트머리 집 현관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들어가니 영락없는 가정집이다. 그런데 집안 공기가 좀 달랐다. 방과 거실을 채운 컴퓨터만 4대. 카메라와 조명, 마이크는 그렇다 쳐도 화면 앞에 모여 앉은 남녀 5명이 사뭇 진지했다. 이들이 베가스(영상 편집 프로그램)로 보고 있는 건 제주 밴드 ‘데빌이소마르코’의 영상. 지난봄 제주도에서 만난 뮤지션이다. “보컬형 머리(카락) 잘랐던데.” “정말? 얼마나?” “잘 어울렸는데….” 화면 속 장발의 보컬이 화제에 올랐다. 

    방금 들어온 김예신씨(24)가 품 안에서 상자를 하나 내려놓았다. “색이 좀 진하게 나왔어.” 못마땅한 말투다. 상자에서 나온 건 엽서 수백 장. 거기엔 ‘흥얼흥얼 팔도어쿠스틱’이라 적혀 있었다. 영상 창작그룹 ‘모자이크’가 진행 중인 프로젝트 이름이다.


     

        ⓒ시사IN 이명익
    모자이크의 이주호, 최인석, 김예신, 김예찬, 김영신씨(왼쪽부터).


    모자이크는 김예신·김예찬 두 형제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생명정보학을 전공하던 예찬씨(26)는 더 재밌는 걸 하고 싶어서 대학을 그만두었다. 2010년 모자이크가 만들어졌고 잡지 <빅이슈>의 창간부터 영상작업을 해왔다. 그새 팀원은 10명으로 늘었다.


    지역 색과 어우러지는 음악 추구

    지난해 5월부터는 한 달에 한 번 서울을 벗어나 지역을 돌며 뮤지션을 만난다. 지역 밴드의 노래와 이야기를 영상으로 담아 홈페이지에 올린다. ‘흥얼흥얼 팔도어쿠스틱’(팔도어쿠스틱)이라는 프로젝트 이름은 예신씨가 지었다. 1년간 서울, 광주, 부산, 대구, 제주 등 5개 지역에서 11개 밴드를 만났다.

    사람들은 “그 바닥이 뻔한데 지역에는 정말 인디신이 없다”라며 말렸다.


     

        ⓒ모자이크 제공
    영상 창작집단 모자이크가 서울 정릉에서 2인조 여성 그룹 호두과자의 공연을 촬영하고 있다.


    실제로 지역 밴드는 찾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단순한 방법부터 동원했다. 인터넷 검색. 대구가 궁금하면 ‘대구 밴드’로 검색했다. 제법 규모가 되는 대도시에서도 라이브클럽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밴드들은 잘되면 서울로 떠나곤 했다. 그래도 인디신이라 부를 만큼은 아니지만 제 나름의 이유로 본거지를 사수하는 뮤지션들이 존재했다.  

     

    섭외에 나서자 이들 일부는 ‘모자이크’에 의심의 눈초리부터 보냈다. 이미 몇 차례 지역방송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팀 중에는 방송국의 ‘연출’에 이력이 났다는 뮤지션도 있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음악은 배고픈 직업이니까(게다가 지역 밴드니까), 힘든 현실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 해서 라면 먹는 장면을 찍자고 요구한다. 예찬씨는 “그렇게 밴드를 대상화하는 과정을 여러 차례 겪어온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우리도 경계하더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진심을 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촬영 장소 결정은 뮤지션에게 일임했다. 버스킹(거리공연)을 많이 하는 팀은 길거리가 무대였다. 대구 수성교 아래에서, 대구 방천시장 김광석 거리에서, 제주 감귤밭에서, 부산 해운대에서 인터뷰와 거리공연을 진행했다. 텐트에서 인터뷰를 나누기도 했다.

    모자이크 팀은 무엇보다 지역 색과 밴드의 색이 어우러지길 바랐다. 
        

    ⓒ모자이크 제공
    대구에서 활동하는 밴드 ‘건훈씨’의 정소임씨(위 왼쪽)와 오건훈씨(위 오른쪽).

    그들은 살아온 곳에서 음악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모자이크 팀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뮤지션은 대구의 ‘건훈씨’다. 오건훈씨와 정소임씨 2인조 밴드인 ‘건훈씨’는 3년 전 광주 문화방송 <문화 콘서트-난장>의 ‘지역 밴드 열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실력파다. 이들에게 왜 서울에 가지 않고 대구에 머무느냐고 물었다. “부모와 친구들이 있고 내가 살아온 곳이라 여기서 음악 하는 게 제일 즐겁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따져보면 우문이다. 대구 출신에게 왜 대구에서 활동하느냐고 묻는 일. 하지만 이들도 처음 받는 질문이 아니었다.

     

    7~8년 전 대구에도 인디음악 붐이 일었다. 클럽이 여러 개 생겼지만 지금은 수성구에 있는 네버마인드 한 군데만 남았다. 건훈씨는 “대구라는 지역이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힘들다. 그래도 우리는 대구와 함께했던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로컬을 기반으로 레이블을 만들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가끔 서울 공연도 한다. 대구는 고정팬이 있어 호응이 좀 있는데 서울에 가면 완전 무명이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며 긍정의 힘을 보여줬다.

     

    제주도는 특히 자연의 느낌이 남달랐다. 1~2년 홍대 앞에서 음악을 하다가 고향으로 내려간 데빌이소마르코는 집값을 생각하면 오히려 공연이 있을 때 비행기로 왔다 갔다 하는 게 훨씬 싸다고 했다. 이들의 음악엔 제주도, 섬만의 정서가 따로 있었다. 이주호씨는 “제주에서만 할 수 있는 음악이었다. 지역이 다르다고 해서 다른 음악색을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은데 데빌이소마르코에게 독특한 지역색깔을 발견했다. 팔도어쿠스틱의 지향점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라고 말했다. 노래가 느리면서도 리드미컬했다. 자연과 관련된 가사가 많았다

     

     

    ⓒ모자이크 제공
    제주에서 원우먼 밴드 제이디를 촬영하는 모자이크 팀원들.


    지역마다 반응하는 색깔도 달랐다. 극단적 차이를 보여준 게 버스킹이었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DHMP의 라이브를 찍을 때, 연주를 시작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관심을 보였다. 반면 광주는 다소 소극적이었다. 대학가 앞에서 연주를 하는데도 별 반응이 없었다. 최인석씨(24)는 광주 어느 거리에나 젊은이들이 비교적 적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강준만 교수가 전북 지역 젊은 층의 유출이 전국 최다라고 한 적이 있다. 서울로 다 유학을 가버리기 때문이다. 전북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그걸 체감할 수 있었다.”

     

    방문 지역이 늘수록 지역 밴드가 가진 한계도 뚜렷해졌다. 무관심이 가장 큰 적이었다. 주말 공연이고 지역을 대표하는 밴드인데도 공연날 클럽에 모인 청중은 열 명 남짓이었다. 지자체의 문화 지원은 오페라 같은 대형 공연에 집중돼 있었다. 대중 뮤지션의 몫은 없었다. 부산을 기반으로 10년 이상 활동한 한 팀은 음악적 고집을 접고, 좀 더 쉬운 곡을 만들어 라디오, 행사 등에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체험담을 전해주었다. 그래도 잘 풀리지 않았다. 언론은 잘 안 알려져 있는 밴드에 관심이 없고, 대중은 방송에 안 나오니 밴드 자체를 모르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밴드 팀원들은 대개 악기 레슨, 디자이너, 회사원 따위 다른 일을 병행했다. 그건 서울이나 서울 밖이나 마찬가지였다.


    “후배들을 위한 인프라 만들고 싶어”

    광주의 ‘우물안개구리’는 “아등바등 버티고 있다”라고 말했다. 선배들이 서울로 다 빠져나가니까 그곳을 책임질 사람이 없었다. 성민걸씨는 “우물 안 개구리 하면 안 좋게 생각하는데 개구리가 우물 안을 좋아할 수도 있다. 재능 있는 지역 후배들이 계속 음악 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마련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모자이크 제공
    지난 2월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열린 밴드 DHMP의 공연.


    팔도어쿠스틱은 모자이크 팀에게 때론 일이고, 가끔은 여행이었다. 늘 즐겁지만은 않았다. 열심히 영상을 올려도 ‘바뀌는 게 뭔가’ 하는 무력감이 들었다. 무관심이라는 한계를 메우기가 쉽지 않았다. 비용 문제도 걸림돌이었다. 제안서를 들고 기업체를 다니며 설득해야 했다. 지원받기로 했던 업체 중 하나는 노조 탄압 문제가 심각한 걸 알고 도움을 거절했다.

     

    그래도 작업을 계속해온 건 그들이 만난 뮤지션과 같은 이유에서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한다. 서울이건 지역이건, 뮤지션들은 사는 곳과 상관없이 음악이 먼저였다. 모자이크 팀도 마찬가지다.

     

    팔도어쿠스틱은 6월로 시즌1을 마치고 곧 시즌2에 들어간다. 벌써 인천을 다녀왔고 다음 행선지는 강원도 원주와 대전이다. 6월30일과 7월1일에는 시즌1을 마감하는 공연이 홍대 카페 COMMON에서 열렸다. 앞으론 구미·양산처럼 대도시가 아닌 곳도 가볼 예정이다. 비틀스도 시작은 작은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했다.

     

     

     

    [출처: 시사IN 임지영 기자 | toto@sisain.co.kr 기사에서 발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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