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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월의 헬로루키 심사위원 한현우] 이병우의 '애국가 기타 독주' 들어보라
    2012 헬로루키/Story 2012. 7. 11. 16:08

    [한현우의 팝 컬처] 애국가는 국가 아니라고? 이병우의 '애국가 기타 독주' 들어보라

    (한현우 기획취재부 차장)

     

     

    EBS 오디션 프로그램 '헬로 루키'의 이번 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게 됐다.

    TV에 온갖 요란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무하지만 EBS '헬로 루키'는 2007년 시작한 최장수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요즘 '나가수'에서 뜨는 밴드 '국카스텐'이 2008년 이미 '올해의 헬로 루키'로 뽑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아무리 좋은 음악 프로그램도 말장난을 섞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시대에

    '헬로 루키'는 참으로 묵묵하게 앞만 보고 걸어왔다.

    이달에만 총 83개 팀의 신인 뮤지션들이 참가한 '헬로 루키' 심사가 지루하긴커녕 즐거웠던 것은

    새로운 음악을 듣는 걸 즐기는 게 몸에 밴 까닭일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내가 가장 음악에 탐닉했던 때는 중·고등학교 시절이었다.

    특히 외국 음악의 낯설고 신선한 매력은 아무리 듣고 또 들어도 동나지 않았다.

    내가 처음 본 내한 공연은 영국 팝그룹 '둘리스'의 첫 번째 한국 공연이었다.

    둘리스는 개그맨 조혜련이 "아나까나 까나리 까니 키퍼웨이" 하고 우습게 불렀던 노래

    '원티드(Wanted)'를 히트시킨 7인조 그룹이었다.

    원래 가사가 'You're the kind of guy that I gotta keep away'였고,

    실제 그때 내 또래들은 이 노래를 그렇게 불렀다.

    같은 해 겨울에 호주 록밴드 '리틀리버밴드'가 서울 무대에 섰다.

    리틀리버밴드는 당시 전성기를 누리던 팀으로 아마도 최초로 내한 공연한 외국 록밴드일 것이다.

    지금도 음악애호가들 사이에서 이 밴드의 내한 공연을 본 경험은 일종의 '훈장'처럼 여겨진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하지만 나의 음악 편력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당시 대학에서 외국 음악을 '제국주의 음악'이라고 지탄했기 때문이었다.

    '월간 팝송'을 탐독하고 영어 노래 가사를 흥얼거리는 건 요즘 말로 '종미(從美)' 취급받았다.

    그렇게 낙인 찍히는 게 싫어서 슬금슬금 외국 음악으로부터 멀어졌다.

    사실 당시 '외국 음악=제국주의 음악'이란 등식은 어지간히 무식하지 않고는 못할 소리였다.

    그 무렵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이 듣던 외국 음악은 대부분 사이키델릭 록과 하드 록, 프로그레시브 록 같은 것이었다. 이 음악들은 히피문화와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 저 유명한 1969년 히피들의 대축제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도 이런 음악들이 대종을 이뤘다. 제국주의와 정반대 성향의 외국 뮤지션들이 만들고 연주했던 음악들이 한국 대학에 와서

    '외세(外勢)'와 '신식민주의'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선전 도구로 둔갑해버린 것이었다.

    당시 대학은 외국 음악만 배척한 게 아니었다. 1991년 열린 대학축제에 가수 김광석(1996년 작고)이 초대됐다.

    그러자 당장 캠퍼스에 대자보가 나붙었다. '신성한 학원에 대중가수 웬 말이냐'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결국 김광석은 그해 축제에 올 수 없었다. 20여년 전 대학의 분위기가 그랬다.

    대학생들의 그런 경직성은 타고난 게 아니었다.

    정치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1980년 광주에 대한 사그라지지 않는 분노가 대학생들로 하여금

    '한가하게 팝송이나 김광석을 듣고 있단 말이야?' 하고 생각하게 했다.

    그렇게 오로지 '운동가요'만 부르고 듣던 시절에도 내가 남몰래 좋아했던 뮤지션이 있었다.

    요즘 영화음악가로 더 유명해진 기타리스트 이병우였다.

    조동익과 함께 '어떤날'이란 그룹으로 활동할 때부터 그는 음악에 대한 나의 갈증을 풀어줘 왔다.

    빈 국립음대와 피바디 음악원을 졸업한 그가 작곡하고 연주하는 기타는

    '제국주의 음악'을 듣지 못하던 시절 내 감성의 빈 공간을 메우고 남았다.

    이병우가 그간 발표한 기타 독집 6장의 모든 곡이 하나같이 다 좋다.

    그러나 그의 최고 연주곡 중 하나는 어느 음반에도 없는 '애국가 기타 독주'다.

    그는 '어떤날' 시절부터 애국가를 앙코르곡으로 종종 연주해왔다.

    그가 연주하는 애국가는 60인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보다 장중하고 안타깝도록 아름답다.

    최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고 했다기에

    갑자기 이병우의 애국가를 듣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음반에 없으니 라이브에서밖에 들을 수 없는데,

    인터넷을 뒤져 어떤 이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이병우 애국가'를 찾아냈다.

    공연장에서 휴대폰으로 녹음한 것이라 음질은 나빴지만 소름 돋는 편곡과 연주는 여전했다.

    이석기 의원도 1980년대 대학에서 "팝송은 미 제국주의의 선전 도구"라고 후배들을 다그쳤을 것 같다.

    그에게 이병우의 애국가를 들어보길 권하고 싶다. 왜 매일 프로야구 경기에 앞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지,

    태극 마크를 달고 올림픽 시상대에 선 젊은이들이 왜 그리 벅차게 눈물 흘리는지 새삼 알 수 있을 것이다.

     

EBS 𖤐 HELLO ROOK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