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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음파 2집 <Kiss From The Mistic> "더 큰 어둠과 더 큰 외로움"
    2012 헬로루키/Story 2012. 6. 19. 12:15

     

    불온한 노랫말과 사운드, 그들이 노래하는 건 '파국'?

    [리뷰] 한음파 2집 <Kiss From The Mistic> "더 큰 어둠과 더 큰 외로움"  

    -오마이뉴스 서석원 기자

     

    한음파는 이정훈(보컬, 기타), 장혁조(베이스), 김윤태(드럼), 윤수영(기타) 등으로 구성된 4인조 록밴드다. 지난 1995년 '심고사'(심장병을 고친 사람들)라는 밴드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1999년 한음파를 결성했고, 2002년 첫 음반인 EP <한음파>를 발표했다.

     

    한음파라는 이름은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마이크 브랜드 명칭에서 따왔다고 한다. 이들은 2002년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2007년 다시 '귀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듬해 교육방송이 주최한 <스페이스 공감 - 올해의 헬로 루키>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음악 팬들에게 실력 있는 밴드로서 그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한음파가 2009년 발표했던 정규앨범 1집 <독감>에 이어 지난 3월 발표한 정규앨범 2집 <Kiss From The Mistic>(키스 프롬 더 미스틱)은 총 10곡을 담고 있는데, '도미노'와 'V.L.S.'를 제외한 8곡이 신곡이다. 보컬 이정훈의 말을 빌자면, 사이키델릭했던 1집과 달리 이번 2집은 199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거친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를 추구했다고 한다. (<한겨레신문> 인터뷰, 2012년 5월 17일자)

     

     

    진중해진 노랫말과 사운드,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이번 앨범은 지난 1집에 비해 노랫말과 사운드 두루 진중해지고 그 밀도가 높아졌다. 가장 눈에 띄는 곡은 두 번째 트랙 '안개 여인의 키스'인데, 이 곡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대중적인 곡으로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한번 들으면 쉬 잊히지 않는 매력적인 사운드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곡이다.

     

    'Damage'(데미지)는 자신에게 고통과 아픔만 남긴 이에게 파국을 선언하는 곡이다. 화자는 음흉하고 무자비한 그에게 '가버려 속지 않아'라고 외치지만, 보컬 이정훈의 목소리를 입은 그 외침 속엔 그간 켜켜이 쌓인 울분과 두려움이 뒤엉킨 채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변화무쌍하면서도 강렬한 록 사운드, 절규하듯 감정을 토해내는 야성적인 보컬, 전위적인 마두금(馬頭琴) 소리가 인상적인 곡이다. 스트레스를 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곡을 들으며 한바탕 속풀이를 할 수도 있겠다.

     

    '안개 여인의 키스'는 떠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곡이다. 자욱한 안개를 바라보며 화자는 연인이 자신에게 꼭 안겼던 그 날의 기억을 날카롭게 추억하고 있다. 그 날 역시 안개가 자욱했던 터라, '오늘' 그녀가 마음에 사무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베이스, 기타, 드럼, 키보드, Fuzz 기타 등이 만들어내는 명징한 비트와 신비로우면서도 불온함이 감도는 멜로디가 마치 안개가 만들어낸 미궁 속에 갇힌 듯 어쩔 줄 모르는 화자의 감정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해주는 곡이다.

     

    타이틀 고 '재촉'은 가타부타 말없이 애를 태우는 상대에게 본심을 말해 달라고 청하고 싶은 남자의 마음을 담은 노래다. 그 상대는 연인으로 추정되는데, 화자가 확인하고 싶은 건 결국 그 연인이 자신을 기다려왔는지 여부다. 남자는 연인의 침묵과 한숨 때문에 애간장이 타지만 왜 그러는 거냐고 묻기조차 두렵다. 다가서면 멀어져 버릴 것 같은 기분 탓이다. 빠른 리듬은 화자의 초조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로 또 같이 내달리며 날렵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두 대의 기타가 귀를 즐겁게 해준다.

     

    '내부고발자'는 한 내부고발자의 내면을 묘사한 곡이다. 패거리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내부고발자는 흔히 배신자의 동의어로 인식되곤 한다. 화자는 그 날 이후 쏟아지고 있는 비웃음들과 그만 사라져 달라는 무언의 압력 속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나에게만 보이지 않았던 지워지지 않은 깊은 낙인', '내게만 더 크게 울리는 송곳처럼 날카로운 속삭임' 등 집단 따돌림을 의미하는 노랫말은 울림이 크다. 부글부글 속으로 삭이던 화자의 감정이 마침내 터져 나오는 후렴부의 기타 사운드가 강렬하다.

     

    주술적인 분위기로 시작하는 '잠영'은 가위눌림을 소재로 한 곡으로 읽힌다. 화자는 밤마다 물속에서 허우적대다 가라앉는 꿈을 꾸는데, 그토록 그의 마음을 짓누르는 건 노랫말에서 '너'로 명명된 사람에 대한 기억인 듯하다. 화자에게 그는 꿈속에서 찾아 헤매는 사람이자, 아침에 눈을 뜨면 어제와 같이 선명한 영상으로 떠오를 사람이기도 하다. 묵직하게 깔리는 베이스와 지글거리는 기타 소리가 도드라지는 두 번째 간주와, 두터운 소리로 삶의 고단함을 표현한 마두금 연주가 돋보이는 세 번째 간주가 인상적이다.

     

    음산한 사운드로 문을 여는 'V.L.S.'는 뱀파이어의 사랑을 노래한 곡이다. 제목 'V.L.S.'는 'Vampire Love Song'(뱀파이어 러브송)의 약자다. 아침이 오기 전에 와 달라든지, 재가 되기 전에 마음을 보여달라든지, 뱀파이어 이야기의 컨벤션을 차용한 노랫말이 재미있다. 곡 구성은 이번 앨범에 실린 다른 곡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출하고 밝은 분위기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노래지만, 경쾌하고 명랑한 사운드가 흥을 돋운다.

     

    '머리, 위, 사람'은 이번 앨범에서 주로 베이스와 백그라운드 보컬을 담당한 장혁조가 메인 보컬로 나선 곡이다. 노랫말은 앞뒤 맥락을 파악하기엔 각 소절 간 의미의 여백이 너무 크고 미니멀하다. '머리 위로 떨어진 그 사람'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이 곡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상상력을 동원하며 감상해도 좋겠고,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 쿨한 리듬과 따뜻한 중저음이 지배하는 사운드에 온전히 집중해도 좋을 만한 곡이다.

     

    '화석목'은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한 남자의 회한을 그린 곡으로 읽힌다. 노랫말에 나오는 '시간을 넘어선 소년'과 '돌아선 사내'는 화자인 '나'와 동일 인물이다. 소년 시절의 꿈을 이미 저버린 어른이 된 화자는, 그 시절을 가리켜 '굳어버린 화석'이라 일컫는데, 이는 그 때의 약속을 지키기엔 자신이 너무 변해버렸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 일 것이다.

     

    미로 같은 초현실주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이 곡의 백미는, 베이스와 기타, 드럼을 기반으로 심란함을 부추기는 묵직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다. 이번 앨범을 프로듀싱한 로다운30의 리더 윤병주의 '지문'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곡인데, 로다운30의 정규앨범 2집 수록곡 '서울의 밤'과 비교해 들어보면 좋을 듯하다.

     

    '도미노'는 거부할 수 없는 욕망에 관한 곡이다. 화자는 '무거운 외로움'과 '숱한 바램'과 '흥얼거리는 이름' 등이 야기하는 욕망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절망의 길을 밟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욕망을 쌓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하나가 쓰러지기 시작하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도미노에 빗대 표현하고 있다. 느리고 사이키델릭한 밴드 사운드, 처연한 마두금 연주, 이정훈의 서정적인 보컬 등이 나른하면서도 깊은 슬픔과 허무, 절망을 느끼게 해준다.

     

    'Denial'(디나이얼)은 깊은 절망에 관한 곡이다. 지금 화자는 어둡고 외로운 터널 같은 인생의 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그 터널에서 화자는 그 '어둠 끝에 더 큰 어둠'이 있고 그 '외로움 끝에 더 큰 외로움'이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있다. 시종일관 낮게 깔리며 불길함을 돋우는 베이스, 이른바 '귀곡성'의 배경음 마냥 기괴함을 더하는 마두금 소리, 절망의 끝에 선 이의 절규를 표현한 이정훈의 보컬 등이 선명한 '지옥도'를 남긴다.

     

    끝없이 절망하면서도 S.O.S를 보내고 있는 노래들 

     

    이번 앨범에 실린 곡들은 대부분 돌이킬 수 없는 어떤 파국의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관계의 파국 또는 어떤 한 시기의 파국을 의미하는데, 이는 화자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상대방이 자신에게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 자신에 대한 실망 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특히 거짓된 것들에 대한 거부감은 앨범 전반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파국에 임하는 노래 속 화자들은 대체로 무기력한 모습이다. '그때처럼 내게 꼭 안겨줘'('안개 여인의 키스'), '날 오해하지 말아 줘'('재촉'), '날 제발 벗어나게 해 줘'('내부고발자'), '내 손을 잡아 줘'(잠영'), '나를 찾아와 줘'('V.L.S.') 등 빈번히 사용된 청유형 노랫말들이 마치 'S.O.S.'처럼 읽히는 이유다.

     

    그래서 문제는 파국 이후다. 이들에겐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으리란 자신감도 기력도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 화석 같은 존재가 되어 살아가거나('화석목'), 부질없는 욕망을 쌓고 허물기를 반복하며 절망의 길을 걸을 뿐이다('도미노').

     

    이처럼 한음파가 이번 앨범을 통해 그린 세상은 사람이 살아가기엔 너무도 어둡고 외로운 곳이다. 게다가 여기엔 '이 어둠 끝에 더 큰 어둠'이 있고 '이 외로움 끝에 더 큰 외로움'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도사리고 있다. 이 모든 재앙은 결국 사람이 만들어낸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음파는 사람 일반에 대한 희망만은 끝내 거두지 않는다.

     

    끝없이 절망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S.O.S'를 보내고, '안개 자욱했던 그 어느 날' 같은 구원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일찍이 시인 박노해가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하기야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이 희망이 되지 못하는 세상이라면, 사람으로서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는 세상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EBS 𖤐 HELLO ROOK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