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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기 넘치는 사운드의 새로움 [서정민갑의 뮤직코드] 밴드 이씨이 ‘나를 번쩍’
    2013 헬로루키/루키 뉴스 2014. 10. 15. 13:26



    패기 넘치는 사운드의 새로움 

    [서정민갑의 뮤직코드] 밴드 이씨이 ‘나를 번쩍’



    아주 가끔씩 리뷰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음반들이 있다. 무언가 와닿게 만드는 음반들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감동적이거나 독특하거나 웰메이드인 음악이라고 할까. 멜로디가 아름답고, 가사가 깊이 있으며, 보컬 또한 아우라가 있는 음악. 연주가 흠잡을 데 없고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 의도대로 표현해내는 음악. 음악의 사운드가 여느 뮤지션의 음악과는 다른 오리지널리티를 가지고 있는 음악. 조금 서툴고 거칠더라도 마음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는 음악. 사운드가 비어 있거나 꽉 차 있거나 상관 없이,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이 아주 잘 조율되고 매끈하게 다듬어졌으며 섬세하게 연출된 음악. 이런 음악들을 만나면 이 음악에 대해 해명해보고 싶어진다. 이 음악에 대해 분석해보고 싶어진다. 음악적 아름다움의 근원과 개성의 원인을 밝혀보고 싶고, 그 사운드가 어떠한 음악 역사와 사회적 컨텍스트 속에서 형성된 것인지에 대해 추적해보고 싶어진다. 음악의 속과 밖을 모두 샅샅이 헤집으며 음악만큼의 힘을 가진 문자 언어의 집을 지어보고 싶어진다.

    지난 8월말에 출시된 밴드 이씨이(ECE)의 첫 번째 정규 음반 <나를 번쩍>을 들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밴드 이씨이는 ‘2012년 4월부터 홍대 클럽 씬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래, '2012년 쌈지 숨은고수', '2013년 EBS 올해의 헬로루키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으며 적잖은 주목을 받고 있는 밴드이다.

    그런데 이씨이의 음악은 여느 밴드의 음악과는 사뭇 다르다. 기존의 밴드 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던 록이나 개러지, 하드코어 같은 익히 알려진 장르의 음악이 아닌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은 달콤하지 않고, 감성적이지 않으며, 발랄하지도 않다. 그래서 이씨이의 음악을 듣게 되면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트랜드와 거리를 둔 남다른 사운드 때문에 이씨이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굳이 장르로 따지자면 이씨이의 음악은 펑크(Punk)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이씨이의 음악이 대개의 펑크 음악과 유사한 것이 아니다. 이씨이의 음악은 어떤 장르의 문법과 스타일을 고수하는 편이 아니다. 또한 장르와 장르를 섞으며 새로운 장르를 실험하는 편도 아니다. 그보다는 그저 사운드를 통해 무언가 자신들이 표현하고 싶은 새로운 시공간을 창출해내는 편에 가깝다.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드럼, 보컬이라는 4인조 편성에 트럼펫을 더해 이씨이는 그 악기들을 가지고 소리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어떤 사운드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고 이씨이의 음악이 심하게 아방가르드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씨이의 음악은 아무런 구조도 없고, 흐름도 없이, 그저 자유연상과 자동기술에 의한 사운드를 주구장창 풀어헤쳐 놓거나 기괴한 소리들을 마구 섞어가며 늘어놓는 음악은 아니다. <나를 번쩍>의 수록곡들에는 테마가 되는 비트와 멜로디가 분명히 있으며, 때로 잘 들리지 않지만 노랫말 역시 분명히 있다. 사실 보컬과 기타, 베이스와 드럼, 트럼펫으로 낼 수 있는 소리라면 소리의 가능성이 명확하지 않은가.

    이씨이의 차별성은 개별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차별성이 아니다. 예전에 없던 소리를 새롭게 만들어 내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밴드 음악을 이루는 소리들이 하나의 곡이라는 구조물 안에서 구성되는, 그러니까 소리가 출현하고 섞이며 존재하고 사라지는 방식의 차별성이며, 그 차별성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남다른 스타일의 차별성이며, 다른 구성 방식을 통해 만들어내고 제시하는 다른 감성의 차별성이다. 밴드 멤버들의 개별적인 연주가 탁월하다거나 앙상블이 탁월해서가 아니라 - 연주를 못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집합적인 소리의 총체로서의 사운드의 발상이 개성적이기 때문에 이씨이의 음악은 차별적이다.

    모두 12곡이 수록된 음반을 보면 곡을 끌고 가는 것은 리프에 기반한 테마나 비트가 아니다. 밴드의 리더인 보컬리스트 김동용의 보컬은 명징하게 들리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아 종종 단발마의 연속적인 비명처럼 들리고, 노랫말 역시 곡과 마찬가지로 또렷한 서사의 기승전결 구조를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개의 노래들이 가사의 정서와 지향을 사운드로 외화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씨이의 음악은 노랫말의 경쾌한 리듬감과 자유로움이 통통 튀는 비트와 혼재된 사운드, 두서없는 구조로 표현되는 편에 가깝다. 그래서 노랫말만 읽었을 때는 와닿지 않는 음악이 비로소 들었을 때 또렷해진다.





    음반의 첫 곡인 ‘Intro Song'에서부터 이씨이의 개성은 명확하다. 지글거리는 기타 연주와 산발적으로 웅얼거리는 보컬, 낮게 깔리는 드러밍은 음습하면서 주술적이다. 낮게 깔리는 소리와 높게 치솟는 소리가 중첩된 사운드는 통일적이라기보다는 분산적이지만, 반복적인 비트와 보컬은 곡의 중심을 구축하며 돌출하는 사운드의 구심점이 된다. '기승전결'보다는 '기기기기'에 가까운 곡의 전개방식은 끊임없이 소리를 풀어가며 순간순간이 중심이 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사운드의 구성 방식이 이씨이의 개성으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그러다 돌연 곡을 끝내버리는 방식은 앨범이 하나의 연작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에 반해 '붐비세' 같은 곡은 리드미컬한 리듬감이 주도하고 보컬 역시 규칙적이다. 그리고 일렉트릭 기타의 연주와 보컬이 대칭하듯 펼쳐 보이는 난장 역시 격렬하면서도 시종일관 경쾌하다. 그런데 막간의 삽입곡 같은 '거꾸로 선 남자'는 노랫말도 없고 그저 지직거리는 노이즈와 독백, 투명한 기타 연주, 퍼커션 연주만으로 짧은 곡을 완성해냄으로써 전혀 다른 표정을 짓고 있어 흥미롭다. 여기에 비하면 'Somehowpow'는 처음부터 테마를 맹렬하고 선명하게 제시하며 경쾌하게 반복하는 리듬감이 인상적이다. 음반의 수록곡들 중에는 이렇게 비트가 도드라지는 곡들이 적지 않지만 이씨이의 음악은 그 사운드를 단순명쾌하게 끌고 가지 않고 끝없는 충돌을 만들어낸다.





    'Base on the kitchen'의 경우에도 선명한 보컬에 비해 깔리는 연주는 매우 노이지하고 어지럽다. 그 소리들이 각각 독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끊임없이 침입해 들어오는 것이 이씨이 사운드의 묘미이다. 그랬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민속음악의 정취를 뿜어내는 'Ballad 100' 같은 곡을 이어놓는 방식은 음반에 낙차 큰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씨이의 연주력과 상상력이 가장 돋보이는 곡은 음악적 공간감이 확장되는 'Another brother'이며, 그 공간감이 'Concorde to Congo'로 연결되어 분출하는 순간이다. 'Jumping salmon'의 간주 부분을 비롯해 스스로의 서사를 가진 앨범의 구성이 청각적 쾌감으로 확인되는 순간은 확실히 유쾌하다.

    이씨이의 음악을 들으면 음악을 이해하는 열쇠가 단순히 멜로디와 가사, 보컬에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멜로디와 비트의 매력이 강력하거나 혁신적이지 않아 쉽게 들리는 음악은 아니지만, 음악이 사운드를 통해 말하는 것임을 그리고 나름의 질서를 가진 구조물이라는 것을, 새삼 일러주는 음악은 음반의 보도자료를 읽더라도 그대로 이해되지는 않을만큼 종종 생경하지만 이씨이의 음악을 듣고 나면 확실히 다른 소리에도 쾌감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고, 음악의 공간과 구조 자체에 주목하게 된다. 현대 미술의 많은 작품들이 그러했듯 기술적 완성도만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라 발상으로 새로운 음악이다. 그 음악이 아직 다 익지 않았고, 음악의 밀도가 온전히 음반으로 담기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좋다. 때로 패기는 모든 것에 우선한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음악의 길이 다시 열릴 것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 bandobyu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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