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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악칼럼] 오늘도 기다리는 마음으로 심사위원석에 앉는다
    2011 헬로루키/Story 2011. 8. 17. 09:32



    신인 뮤지션들을 발굴하기 위한 프로젝트 헬로루키가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준 김현준 심사위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려보자. 그의 가슴벅찬 회상 속에는 뮤지션들이 주인공이고, 그리고 사라져간 주인공들도 뮤지션들이다. 뮤지션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아직도 기억되는 주인공들, 그들을 다시 불러본다. 


    | 최초의 헬로루키 오지은

    2007년 7월 초의 어느 날, 서울 양재동 P연습실. 메마른 생머리를 자연스레 늘어뜨린 흰 피부의 한 가수가 다소곳이 자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첫 소절부터 독특한 음색이 흐르기 시작했다. 긴 테이블을 놓고 앉아 심사에 임하고 있던 우리는 이내 팽팽한 긴장감에 빠져들었다. 노래가 끝났다. 자연스레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오디션을 거쳐 첫 헬로루키로 이름을 올린 이가 바로 오지은이었다. 그날 부른 두 곡 중 하나는 ‘화(華)’.

    이제는 공개오디션을 거쳐 그달의 헬로루키를 선정하지만, 처음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2007년 당시엔 그런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 연말의 결선 무대는 더더욱 준비할 여력이 없었으며, 이 기획 자체가 EBS 스페이스 공감 내부에서 마련한 월간 행사의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의미는 결코 작지 않았다. 우리나라 음악계의 현실을 그보다 더 적나라하게 엿볼 기회가 또 있었을까.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 헬로루키 존재의 이유
    
    “공중파 3사의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한국 음악계의 상황을 결코 대변하지 못한다. 아니, 되레 왜곡하고 있다. 그럼에도 꿋꿋이 제 음악을 하기 위해 음지에서 노력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알려지지 않은 이들이라 해서 모두 뛰어난 음악을 하는 건 절대 아니다. 냉정히 말해 제대로 평가 받아야 할 이들은 그 음지의 음악인들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하루가 멀다 하고 텔레비전에 얼굴 내미는 이들이 한국의 음악을 대표한다고 얘기되는 건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안타까운 일이다.”

    헬로루키를 출범시킨 가장 큰 이유는, 뛰어난 인디 음악인들에게 방송 출연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들이 더 좋은 음악을 펼칠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울러, 우리 음악계에도 이처럼 다양한 양식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걸 입증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EBS 스페이스 공감의 제작진들은 모두 여기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오디션이 거듭되면서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헬로루키를 통해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게 아닌가. 2008년, 악스홀에서 열린 그 해의 결선 무대를 지켜보다가 나는 마이크를 들고 관객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사람들은 EBS 스페이스 공감이란 프로그램이 있어서 헬로루키가 존재할 수 있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표현이다. 지금 무대에서 연주하는 저들이 있기에 EBS 스페이스 공감이 존재하는 것이다.”

    2007년 10월의 헬로루키였던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

    헬로루키에 도전해온 많은 음악인들을 마주하며, 나는 그들이 아직 야성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에 늘 고마워하곤 했다. 다르게 말하면, 이 또한 내가 심사를 하면서 잣대로 삼는 중요한 몇 가지 중 하나다. 작년이던가, 이런 경우가 있었다. 어느 밴드가 음원 심사를 통과해 공개오디션 무대에 섰다. 연주력도 탄탄했고 지향도 명료했다. 멤버들 간의 호흡 또한 나무랄 데 없어서, 꽤 오랜 시간 연습에 몰두해온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요즘 이런 스타일이 뜨고 있으니 그런 노래를 만들어 연주하면 사람들이 좋아하겠지’하는 투의 영악한 마음이 너무 쉽게 간파됐다. 물론 그 밴드에게 월간 헬로루키의 한 자리가 주어질 리 없었다.

    나는 헬로루키를 통해 일종의 ‘젊은 피 수혈’을 하는 셈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지 자신이 좋다고 믿는 것을 꿋꿋하게 밀어붙이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혹시 그 성과가 여의치 않았다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음악인들. 그들이 선보이는 무대를 통해 나는 지나간 나의 청년기를 반추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되짚어 본다. 물론 고집스레 뭔가를 진행한다 해서 그것이 언제나 설득력을 갖는 건 아니다. 나 자신의 목소리보다 타인의 시선을 더 염두에 두는 태도가 어느 정도 안정적인 방향으로 음악을 이끌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결정적인 감동을 안겨준 존재들은 예외 없이 전자에 속했다. 그게, 음악의 역사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이다.

    EBS 스페이스 공감에서 공연하는  2007년 11월의 헬로루키 <안녕바다>, 공연일시 2007년 11월 12일이었다.

    | 다시 그들을 불러본다

    종종 2007년의 헬로루키들을 다시 떠올린다. 화려한 조명을 받지 못한 채 컴컴한 연습실에서 오디션을 치러야 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분명 살아 있었다. 꿈틀대는 무언가가 가슴 한복판에 묻혀 있다가, 이내 옷깃을 터뜨리며 뛰쳐나오려고 발버둥쳤다. 그러나 그들 중 몇몇은 더 이상 음악 활동을 하지 않는 모양이다. 모든 게 선택의 문제이니 뭐라 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그들을 마주하며 가슴 벅차 했던 이들이 없지 않았음을 잊지 않기 바란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하든, 그건 세상을 살아가면서 큰 위안이 될, 더없이 소중한 자산이다. 

    <21스콧>은 안녕바다와 차미 프로젝트와 한 무대에 섰다.

    아직도 기다린다. ‘화(華)’의 감동이 오지은의 또 다른 곡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되기를. 활동만 지속했다면 분명 우리나라 흑인음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을 이어픽(Earpick)이 더 늦기 전에 제 자리로 돌아오기를. 로로스(Loro's)의 새 앨범이 발표되기를. 가끔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레나타 수이사이드(Renata Suicide)의 행보가 좀더 적극적으로 이어지기를. 처음 등장했던 시절의 그 풋풋함이 안녕바다에 다시 깃들기를. 진중한 펑크의 외침을 쏟아내던 21스콧(21Scott)의 어깨에 삶의 무게가 너무 과하게 주어지지 않기를. 그래서 이 모든 이들이 언제나 EBS 스페이스 공감의 1순위 섭외 대상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기를.

    김현준 (재즈비평가/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헬로루키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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